공자(孔子)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으뜸가는 철학자이며 예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와 함께 4대 성인 중 한명입니다. 그리스의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년~399년)가 서양 철학의 원조라면 공자는 동양 철학의 태두로 불리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는 소위 ‘공자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대개 유교 문화권임을 염두에 두고 이 지역에서 중국이 문화적, 정신적 종주국으로 자처하려는 야심으로 공자를 논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노나라 곡부(曲阜)사람인 이름은 구(丘), 자(字)는 중니(仲尼)입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말엽인 B.C. 552년에 노나라 대부(大夫)인 흘(紇)의 아들로 태어났고,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스물 넷이 되는 해에 어머니마저 잃습니다.
공자는 일찍 부터 예교(禮敎)에 심취해 학문과 도덕에 힘써 서른 세 살에는 남궁경숙(南宮敬叔)과 함께 주(周)나라로 가서 노자(老子)를 만났고, 서른 다섯 살 때에는 제(齊)나라에서 안평중(晏平仲)과 교유하면서 견문(見聞)을 쌓습니다. 서른 일곱에 다시 노나라로 돌아 온 공자는 학식과 지혜로 이미 유명한 인물이 됩니다.
공자의 정치, 사회 사상의 바탕을 인(仁)에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군주(君主)가 덕치(德治)를 베풀어 백성(百姓)을 편안하게 하여야 한다는 현실적 정치의식(政治意識)인 동시에 세상에 평화와 안녕을 구현하기 위하여 효제(孝悌)를 통하여 (仁)을 실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효제(孝悌)란 자식은 부모에게 효(孝)를 다하고, 형제간에는 우애(友愛)를 지키는 도덕적 덕목을 실현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나아가 남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공경하고 남의 자식을 내 자식처럼 사랑한다면, 남도 나의 부모와 자식을 자기 가족처럼 공경하고 사랑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세상의 평화와 질서를 바로 잡는 공자의 가르침입니다.
그리하여 모름지기 선비는 스스로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여야 하는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을 실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갈고 닦는 다는 것은 결국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다’라는 뜻의 ‘수기이안백성(修己以安百姓)’은 공자의 또 다른 어록(語錄)인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나 자신이 배우고 덕을 닦는 것은 오로지 백성을 위함이며, 천하(天下)를 편안하게 함이라’는 뜻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와같이 공자의 사상(思想)은 궁극적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스럽게 공존하고 행복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정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말년에 잠시 노나라에서 벼슬을 한 적이 있으나, 당시의 군주들은 공자의 심오한 정치 철학과 선구적인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으므로 B.C. 479년 73세로 세상을 하직할 때 까지 공자의 정치적 이상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정치, 사회 사상은 후세에 전해져 동아시아 여러 민족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4대 성인<공자, 석가모니, 예수, 소크라테스>
공자 사후 4년이 지나서 중국 고대 역사상 춘추시대는 끝나고, 중국 통일의 패권을 다투는 전국시대(戰國時代)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공자는 석가모니보다 7년, 소크라테스 보다 82년, 예수보다는 무려 551년 앞서 태어나 공존과 평등의 심오한 사상을 설파했습니다.